Shepherd
Hoodwin

Michael Channel and Author of
Journey of Your Soul, Opening to Healing, and more

  • Michael Charts
    • Sample Charts and Explanations
    • “What’s Your Role?”
    • Workshop Videos
  • Sessions
    • Intuitive Readings
    • Channeling Coaching
    • Past-Life Therapy
    • Consulting
  • Books
    • Holistic Health for Smarties
    • All Is Choice
      • Why Is Choice So Important?
    • Energy Literacy
    • Compassion for Evil
      • “Compassion for Evil” Excerpts
    • Unconditional Love in Politics
      • Non-Attachment
      • Yin/Yang
    • Journey of Your Soul
      • The Nature of Channeling
      • Channeling Michael Information More Than Once
      • Older Is Not Better
      • More on Casting
    • 내 영혼의 성격은 (Journey of Your Soul—Korean)
    • Being in the World
    • Быть в этом мире (Being in the World—Russian)
    • Why We’re Attracted
      • Biological Defaults and Cultural Norms
    • Growing Through Joy
      • Working with Spirit Guides
    • Opening to Healing
      • Movement
      • Healing Affirmations
    • Loving from Your Soul
      • Loving Yourself
      • Finding Your Mate and Developing Intimacy
    • Meditations for Self-Discovery
      • Three Meditations
    • Happiness and the Michael Teachings
      • Happiness Tips for Each Role
    • Embracing What Is
      • Choice
    • Healing the Gut
      • SIBO
    • Enlightenment for Nitwits
      • Introduction
  • Michael Teachings
    • Michael Teachings Home Page
    • Glossary
    • Michael Teachings Basics
    • Centers
    • “What’s Your Role?”
    • How I Began Channeling Michael
    • Sample Charts and Explanations
    • The Nature of Channeling
    • Channeling Michael Information More Than Once
    • Soul Age: What It Is—And Isn’t (How We Evolve)
    • Older Is Not Better
    • More on Casting
    • Celebrity Overleaves
    • Entities—Traits and Celebrity Members
    • Michael Teachings Humor
      • Messages from Bob
      • Channeling the Butch Entity
      • How I Really Began Channeling Michael
      • “Basically”
      • Dial-a-Michael
      • The Michael Home for Very Old Souls
      • Identical Cousins
      • Supplemental Michael Reading
    • Workshop Videos
    • Interviews
    • Channeled Lecture Videos
  • Perspectives
    • Three COVID-19 Essays By Shepherd Hoodwin
    • Accessing the Divinity in All Things (Including Politics)
    • “Compassion for Evil” Excerpts
    • THE MEANING OF LIFE IS LIFE – Experience and the Michael Teachings
    • Soul Age: What It Is—And Isn’t (How We Evolve)
    • Everyday Life as Spiritual Practice
    • “I Am Love”
    • Key Insights for Spiritual Progressives
    • You Are a Creator
    • Unity Meditation
    • You Are Multidimensional
    • From Coal to Diamond
    • Remembering Your Power
    • Curiosity
    • Seven Planes Meditation
  • Translations
    • Nederlandse vertalingen (Dutch Translations)
    • Deutsche Übersetzungen (German Translations)
    • Terjemahan Bahasa Indonesia (Indonesian Translations)
    • Traduzioni Italiane (Italian Translations)
    • 한국어 번역 (Korean Translations)
    • Переводы на русский язык (Russian Translations)
    • Traducciones al español (Spanish Translations)
  • ORDER
  • Events
  • About Shepherd
    • Songs by Shepherd
      • Lyrics
  • Testimonials
  • Contact

26. 환 생 (Reincarnation)

26. 환 생

당신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삶의 총합입니다. 매일 아침 다른 옷을 입지만, 당신은 여전히 전날과 같은 사람입니다. 잠자는 동안 어떤 점들은 변할 수 있지만, 연속성은 유지됩니다. 죽음은 마치 밤에 잠드는 것과 같습니다. 삶과 삶 사이에 머무는 아스트랄계에서의 시간은 밤 동안의 수면과 같습니다. 그리고 다시 깨어날 때, 당신은 옷이 아닌 새로운 육체(새로운 성격옷과 삶의 환경)를 입지만, 여전히 ‘나’ 자신입니다.
환생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우리의 영혼이 여러 생을 살아가며 그를 통해 경험을 쌓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책은 환생을 증명하려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환생은 마이클 가르침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으로, 이 개념 없이는 그 가르침이 제한적으로만 유용합니다.
대다수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환생을 믿고 있으며, 미국인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그렇습니다. 환생에 회의적인 사람들을 위해 이 주제를 다룬 책들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저는 여러 전생에 관한 생생하고 감정적으로 강렬한 기억을 떠올린 적이 있고, 다른 사람들의 전생을 회상하도록 이끈 적도 있습니다. 사실 저는 충분히 열린 마음과 이완된 상태만 갖추어지면, 거의 누구라도 전생을 기억하도록 안내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어린아이들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장소와 현생에서 한 번도 접하지 않은 과거의 사건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고 자세히 묘사하는 사례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이 환생의 확실한 증거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얼마든지 다른 설명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인데, 저는 그런 설명들이 대개 지나치게 복잡하고 억지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비물질적인 것과 관련된 어떤 것이든, 오직 물질적 증거만을 신뢰하는 사람들을 완전히 만족시킬 만큼 결정적으로 증명해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증명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것이 뒤집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환생을 거듭해 왔다면, 우리 의식의 어떤 부분은 그것을 알고 있으며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은 지금까지 경험해 온 모든 일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지적인 탐구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책을 굳이 읽을 이유도 없겠지요. 그러나 환생 같은 주제에 대한 논쟁에서 궁극적인 판단 기준은 바로 우리 내적 앎입니다. 그 내적 앎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로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과정의 부분입니다. 내적 앎이 없다면, 아무리 끝없이 논쟁을 벌여도 그 문제의 본질에는 한 발짝도 가까이 가지 못할 수 있습니다.

환생 자기들
우리의 하위 아스트랄 자기, 또는 영혼은 우리 본질의 바깥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영혼은 자신 일부를 물질계로 투영하여 환생합니다. 저는 이것을 마치 손이 손가락을 뻗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불꽃이 차원적 우주(시간과 공간, 그리고 여러 차원이 겹겹이 존재하는 복합적인 구조로 이루어진 우주 전체)에 존재하기 위해 자신 일부를 우리의 본질로 투사한 것과 같습니다.
저는 영혼의 그 부분을 ‘환생 자기reincarnational self’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우리 성격의 바탕이자, 성격에 생명을 불어넣어 생동하게 하는 원천이며, 우리가 삶을 시작할 때 기반이 되는 것이자 죽은 후에도 남는 핵심입니다. 다만, 그 인격은 한 생애 동안의 경험으로 더욱 풍부해집니다. 이 환생 자기는 우리의 성격옷과 정체성과 결합하지만, 육체나 일상적인 문제 같은 일시적인 요소들은 죽음 이후에 흩어집니다.
육체의 죽음 이후 환생하는 자아들이 우리의 본질로 다시 흡수되는지, 아니면 독립적인 존재로 계속되는지에 대해 논의가 있었습니다. 분명한 답은 ‘둘 다’라는 것입니다. 각 환생 자기는 본질의 하위 성격과 같으며, 죽은 뒤에도 본질의 틀 안에서 아스트랄계에서 계속 발전하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성격 층위에서는 많은 하위 성격들이 생겨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렸을 때는 나중에 ‘내면아이the inner child’라고 부르는 하위 성격을 형성하게 됩니다. 인격의 그 부분은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것이 곧 우리 자신이었지만, 성장한 지금은 우리 존재의 일부일 뿐입니다. 만약 이 내면아이가 심리적 충격을 받았다면, 치유 받기 위해 계속해서 주의를 끌려고 합니다. 일단 치유가 이루어지면 전체 성격 안으로 통합됩니다. 그러면 더는 성격의 중심이 되지는 않지만, 여전히 제 역할을 하며 발전을 계속해 나갑니다. 그 역할에는 삶에 경이로움과 장난기를 불어넣는 일도 포함됩니다.
우리의 환생 자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 삶을 살았을 때, 그 인격들이 곧 우리 자신이었지만, 이제 그것들은 본질 수준에서 우리를 이루는 하나의 부분일 뿐입니다. 치유나 해결이 필요한 인격들은 우리가 그것을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 우리의 주의를 끌게 됩니다. 어떤 생애에서든 우리 주변에 이러한 존재들이 몇몇 모여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각 생을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계획하며, 그 생을 통해 과거 생의 관련 주제들과 얽힌 미해결 문제들을 다루려고 합니다. 필요한 치유와 해결을 경험하게 되면, 그 환생 자기들은 우리의 본질에 통합될 수 있습니다. 다음 생애에서는 그들이 우리에게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줄어들지만, 그들이 얻은 깨달음과 배움의 결실은 전체 자기에게 제공됩니다. 이 인격들은 내면의 아이가 우리 안에서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하듯이, 본질의 부분으로 남아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합니다. 어쩌면 그들은 본질의 일부로 남아 있는 동시에, 무한히 늘어날 수 있는 끈으로 연결된 채 본질로부터 갈라져 나오는 존재처럼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방식이든, 이 인격들은 우리의 본질을 확장하며 그 안의 창조적인 측면이 됩니다.
환생 자기가 그 생애에서 교훈을 통합해 나감에 따라, 당신의 본질도 환생 자기를 통합하게 됩니다. 환생 자기는 당신 본질의 유기적인 일부입니다. 통합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수천 년 전의 생애에서 비롯된 성격 요소들이 아직 통합되지 않은 채 남아 있기도 합니다.
핵심 성격은 환생 자기의 일부이며, 심지어 자살로 생을 마쳐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내부적으로 심하게 마찰을 일으키는 성격옷을 가진 복합 성격이 죽은 이후에도 스스로 통합하거나 수습하지 못하고 결국 자기 해체에 이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우는 대개 본질의 승인 아래 일어나며, 아마도 본질이 아직 충분한 경험을 갖지 못해 그 성격이 자기 자신과 화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또한 아스트랄 자살이라는 개념도 있습니다. 이는 본질 자체가 자신의 대주기를 조기에 끝내고 완전히 도道로 돌아가기로 작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제15장 ‘이전 주기들’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다른 환생 자기는 우리이면서도 우리와는 다릅니다. 이를 표현하는 한 가지 방식은 ‘우리는 그들과 본질을 공유한다’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삶의 성격은 이전에 살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것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본질은 다른 성격들을 생성해 왔습니다. 우리는 본질을 통해 이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환생을 믿는 사람도, 믿지 않는 사람도 모두 옳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본질이 환생 자기로 분화되는 방식은, 존재체가 여러 본질로 분화되고, 하나의 대영단이 여러 존재체로 분화되는 방식과 같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는 다른 환생 자기가 아니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우리 본질 안에, 나아가 개체와 대영단 안에 포함된 모든 것이 곧 우리입니다.
죽음 이후, 환생 자기는 이전 생애를 되돌아보고 가능한 한 많은 교훈을 통합할 기회를 얻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생성한 본질의 이해 수준을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아직 해결할 능력이 없거나 바라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문제들은, 이후의 다른 환생 자기가 다룰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어떤 문제들과 대부분의 업보는 반드시 물질계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당연히, 문제를 만들어 낸 그 삶 안에서 가능한 한 많이 해결할수록 더 좋습니다. 영적 길을 걷는 사람의 특징은 의식적으로 사는 것, 즉 삶 속에서 자신이 만들어 낸 문제들을 책임지고 정리하며,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 처리하고, 또한 새로운 업보를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자신에 대한 사실을 직시하고 성장하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죽음 이후, 성격과 본질이 당분간 물질계에서 보낸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필요한 만큼 그것을 소화하게 됩니다. 그 과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본질은 자유롭게 새로운 성격을 탄생시킬 수 있게 됩니다. 이전 성격은, 새로운 삶에 깊이 관여하고 있지 않다는 전제하에, 아스트랄계를 자유롭게 여행하고 그 자원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으며, 그 과정을 충분히 이루어 더는 그 여정이 필요하지 않을 때는 본질로 재통합됩니다.
성격은 본질과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본질은 여러 성격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는데, 이는 마치 우리가 다양한 하위 성격을 지니고 있고, 그 하위 성격들은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계속해서 발전해 나갑니다.
삶에서 삶으로
영혼은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이어질 때, 흔히 비슷한 무리와 함께 움직이는 경향이 있지만, 그 무리는 꽤 큽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가령 당신이 자주 어울리는 영혼이 삼백 명쯤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충분히 다양한 조합이 가능합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처럼, 우리가 굳이 원해서 삶에 들인 것은 아닌 사람들조차도 전생에서 인연이 있었던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과의 갈등이나 문제는 전생에서부터 이어져 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내담자들이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매우 강한 감정을 느껴서 마이클에게 전생 연결 여부를 묻는 경우, 대체로 실제로 인연이 있습니다. 만약 없다면, 그 경우는 종종 신체 유형body type에 따른 끌림 때문입니다.
신체 유형의 끌림은 비교적 피상적인 종류의 끌림입니다. 그것은 강렬하고 매우 즐거울 수 있지만, 주로 육체적인 차원에 국한됩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와 정서적인 유대감을 느끼거나, 깊이 서로를 이해한다는 느낌이 들거나, 단순한 육체적 끌림을 넘어선 영적인 에너지의 고양을 느낀다면, 그것은 또 다른 유형의 연결을 나타냅니다.
같은 존재체에 속해 있다면, 보통 친구나 형제자매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만약 다른 존재체에 있지만 같은 대영단에 속해 있다면, 서로 비슷하면서도 상호보완적 존재라는 느낌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당신의 대영단에 있는 모든 사람과 전생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대영단 구성원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를 어딘가에서 아는 듯한 느낌이 들거나 기억이 자극된다면, 아마도 전생 연결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당신의 대영단 소속이지만 특별한 전생 인연이 없다면, 관련성이라는 느낌과 동시에 백지상태라는 느낌이 공존합니다. 더욱이 당신의 대영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과도 중요한 전생 연결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전생에 알았던 사람을 이번 생에 처음 만났을 때, 흔히 예전에 멈췄던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일례로, 당신이 이번 생에서 어머니가 아닌데도 누군가에게 즉시 모성애를 느낀다면, 아마도 당신이 전생에서 그 사람의 어머니였거나 어머니 같은 존재였던 인연을 이어가는 것일 수 있습니다. 왜 그를 돌보고 싶어지는지, 유난히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스스로 의아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들은 이번 생의 상황에 맞춰 그와 관계를 발전시켜 나감에 따라 점차 희미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가끔은 같은 대영단 구성원도 아니고, 이전의 물질적 생애를 함께하지도 않았지만, 아스트랄계에서의 친구이거나 심지어 이전 주기의 친구를 이번 생에서 만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끔 완전히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도 합니다. 흔히들 말하듯이,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는 법이니까요.
내담자들은 사랑하는 이들과의 전생 인연에 대해 자주 질문합니다. 그 속에는 흥미로운 역동성을 탐색할 여지는 많지만, 관계 자체는 대개 익숙한 형태입니다. 배우자·형제자매·부모/자녀·다른 친척·친구·이웃·직장 동료 등입니다. 어떤 사람과 특별히 가까운 관계라면, 위에 언급한 대부분의 관계 유형을 전생에서 공유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어떤 영혼들과는 특별한 관계를 맺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사업적 관계를 맺는 것을 좋아하지만 배우자나 가족 관계는 거의 맺지 않는 영혼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통해 마이클에게 전생에 대해 질문할 때, 마이클은 보통 아카식 기록을 들여다보지는 않고, 그 사람의 에너지에서 정보를 읽어 냅니다. 그편이 더 쉽고 실용적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삶에 영향을 주는 전생들은 비교적 접근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은 전생들은 덜 드러나 있으며, 이 경우에는 아카식 기록을 살펴서 별도로 조사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전생은 대개 그 사람이 질문하게 될 중요한 삶의 문제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정보 수집이든 원자료를 받아들이는 것과 그것을 정확하게 번역·해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마이클이 한 사람의 에너지 속에서 보이는 심령적 영상을 바탕으로 전생을 즉석에서 요약할 때, 가끔은 사소한 오류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보통 그런 세부 사항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관계의 본질·업보·태도·감정 등 그 상황의 역학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합니다.
제 경험에 따르면, 대다수 우리는 대체로 평범한 삶을 여러 번 살아왔습니다. 새로운 영성계New Age circles에서 많은 사람이 서로 똑같은 유명한 역사적 인물이었노라고 주장하는 일이 흔해서, 마치 농담처럼 여겨지며, 과거에 농민이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런 현상에는 제어되지 않는 상상력이나 내담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 주는 심령가나 교신자들 때문에 자아도취가 어느 정도 작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더 복잡하며, 여러 사람이 자신이 같은 인물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사실에 기반한 오해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리가 특정 인물이었던 것으로 읽히는 이유는, 실제로 우리가 그 사람이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어떤 역사적 인물이 본질 교체walk-in 를 경험했거나, 또는 둘 이상의 본질이 그의 몸을 공유하고 있었다면(이는 흔하지는 않지만,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더 흔한 일이다), 그 사람이라고 정확하게 주장할 수 있는 사람도 둘 이상이 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 사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을 수도 있으며, 그 연관성 때문에 그 사람의 에너지가 우리의 오라aura에 남아 있어서, 마치 우리가 실제로 그 사람이었던 것처럼 혼동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이런 식으로 잘못 해석될 수 있는 몇 가지 연관성 형태입니다.
●
우리는 그 인물과 실제로 육체적으로 함께 있었을 수 있습니다. 가령 친구, 가족, 제자, 혹은 심지어 적대자였을 수도 있습니다.
●
우리는 아스트랄계에서 영적 안내자로서 또는 어떤 집단의 일원으로서, 그와 함께 영적으로 협력하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
우리는 이 우주에서는 아니지만, 평행우주에서는 그 인물이었거나 그와 유사한 역할을 맡았던 존재였을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전생에 접속하려 할 때, 그 경험이 꼭 이 우주의 것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재는 이 우주와 같은 흐름에 있지만, 과거에는 같은 흐름이 아니었던 평행우주의 기억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평행우주에 대해서는 제31장에서 다룹니다.
●
우리와 가까운 누군가가 그 사람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 생에서 우리와 밀접하게 협력하고 있는 환생을 마친 같은 존재체의 영혼들이나 다른 비물질적 존재들의 전생을 우리가 접속할 수 있습니다.
●
그 역사적 인물은 단순히 우리가 공감하거나 동일시하는 원형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생 기억이, 일례로 자신이 먹은 당근의 세포 기억(아카식 기록)에 접속한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그 기억은 이미 죽어 분해된 누군가의 몸에 속했던 것입니다. 그 몸의 한 세포가 당근의 부분이 되었고, 우리가 그것을 통해 그 기억을 열어 본 것이라는 이론입니다.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론적으로는 어떤 세포의 아카식 기록에도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특정 전생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그 기억을 자신의 전생으로 착각할 가능성은 작습니다.
전생의 기억이 유전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즉, 우리가 자신의 육체적 조상들의 삶에 대한 기록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가능성은 있지만, 만약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은 특정 조상의 삶만을 기억하고, 다른 조상은 전혀 기억하지 못할까요? 왜 누군가는 가까운 과거의 조상들보다 훨씬 더 먼 과거의 조상을 기억할까요? 전생의 기억이 자발적으로 떠오를 때,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개인적인 의미가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몇몇 조상들과는 전생에서 인연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들이 현재 삶에 얼마나 중요한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전생의 기억을 치유나 성장, 내면의 장애 해소를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면, 그것이 진짜로 당신의 전생인지 여부는 반드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그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 그리고 그 기억이 지금 당신 안에서 무엇을 촉발하는지입니다.
○ 전생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가요?
당신은 여러 생애에 걸쳐 가지고 온 제한적인 신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아는 것이 때로는 도움이 되지만, 진짜 핵심은 그것들을 보고 인식하고 해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방식이든 그것을 도와줄 수 있다면 모두 좋은 일입니다.
한 번은 어떤 새로운 친구를 만났을 때, 직관적으로 유대인 대학살에서 희생된 제 외할머니의 삼촌이었다는 느낌이 번쩍 들었습니다. 저는 이전에는 별 관심 없었던 삼촌의 사진을 꺼내 보았는데, 그 삼촌이 제 친구와 매우 닮았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친구는 금발의 스칸디나비아인이었지만, 얼굴 생김새가 정말 비슷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현재의 몸을 선택한 이유 중 일부가 또 다른 대학살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말하며 저의 직관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동시적 삶
우리의 본질이 다음 생애라고 여기는 삶이, 현생과 같은 물질계 시간대에 존재하거나 심지어 과거에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현대는 인구 폭발과 전례 없는 변화의 시기이기 때문에, 제가 채널링하는 마이클 개체들은 동일한 시간대에 최대 여덟 명의 환생 자기가 동시에 살아가고 있는 본질들을 알고 있습니다.(어떤 교신자들은 그 수가 훨씬 더 많다고도 말합니다.) 제인 로버츠와 채널링하여 전달한 세스는 이런 동시적 환생 자기들을 대응체counterparts라고 부릅니다. 새로운 영성 작가 딕 서트펜Dick Sutphen은 자신의 전생 자기 중 한 명이, 자신이 태어난 지 몇 년 후에 죽었다는 내용도 글로 남긴 바 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는 두세 명 정도의 동시적 자기가 존재합니다. 동시적 생애들은 보통 각기 다른 주제를 갖고 있으며, 서로 거의 관련이 없습니다.
이것은 평행 자기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평행 자기는 우주가 다른 경우로, 기본적인 성격(성격옷 포함)과 생애 과제가 동일하지만, 다른 평행우주에서 살아갑니다. 반면, 환생 자기는 같은 우주(우리의 경우 지구)에서 살아가며, 서로 다른 성격 요소와 삶의 환경을 지닙니다. 동시에 존재하는 환생 자기들은, 단지 지금 이 시점에 살고 있다는 점만 빼면, 과거에 살았던 환생 자기들과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물론, 마이클 분석을 요청하면 당신의 성격옷이 제공되지, 환생 자기의 성격옷이 제공되는 것은 아닙니다.
본질 수준에서 우리는 생애들을 연속적으로 경험합니다. 즉, 마흔두 번째 생애 다음에 마흔세 번째 생애가 이어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본질은 시간의 제약을 어느 정도 초월해 존재하기 때문에 본질에게 시간은 탄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달력에 따르면 마흔두 번째 생애가 마흔세 번째 생애가 시작되기 전에 반드시 끝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은 그렇게 됩니다. 사실, 마흔세 번째 생애가 반드시 마흔두 번째 생애가 시작된 시점보다 늦게 시작될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당신의 본질이 같은 시간대에 둘 이상의 환생 성격 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본질의 발전 여정에서 동일한 시점에 동시에 형상화된 것이 아닙니다. 가령 본질은 마흔두 번째 생애를 먼저 시작한 다음, 마흔두 번째 생애가 끝나기도 전에 마흔세 번째 생애를 시작했을 수도 있습니다. 본질은 다차원적 존재이기 때문에 여러 삶을 동시에 추적하고 관리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본질은 시간을 약간 구부려서, 마흔세 번째 생애를 마흔두 번째 생애가 시작된 것과 거의 같은 시간에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본질에 그리 어렵거나 혼란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본질에 이것은, 각기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지만 같은 시간대에 진행되는 여러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구조로 쓰인 소설을 읽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전 생애보다 더 과거의 시간대, 즉 과거로 환생하는 것은 더 어렵고 혼란스럽고 드문 일입니다. 이러한 환생은 보통 더 경험이 풍부하거나 실험적인 본질만이 감행합니다.(학자 역할의 본질들은 특히 이러한 경험을 즐기는 경향이 있으며, 일반적이지 않은 모든 것을 좋아합니다.) 본질의 처지에서 이런 환생은 연대기 순서가 뒤섞인 소설을 읽는 것과도 같습니다.
본질이 머무는 세 가지 상위 창조계 의 관점에서는 모든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계에서는 시간이 실제로 존재하며, 시간은 아스트랄계와 원인계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칩니다. 환생을 수행하는 것은 하위 아스트랄 자기이며, 그것은 시간의 바깥에 완전히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우리가 이전에 미래에서 살아 본 후, 시간을 거슬러 다시 과거로 환생했다 하더라도, 이 생애에서의 관점은 다른 생애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가능성뿐입니다. 미래의 삶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우리는 다양한 가능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고,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더 선명하게 내다보는 통찰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특정 가능성이 실현되기를 조급해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 평행우주에서 어떤 가능성이 실제로 실현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각 개인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으므로, 어떤 평행우주에서든 미래는 항상 다양한 가능성일 뿐 확정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달력상 미래에 해당하는 전생의 사건을 기억한다고 해도, 그것이 이 우주의 미래에 속한다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달력상 과거에 해당한 전생을 기억할 때도 그것이 반드시 이 우주의 과거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물론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현실은 단순하고 직선적인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애들이 연대기적 순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물질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환생은 아스트랄계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보다는 우리의 본질이 생애들을 시간 순서대로 경험하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 현재 장년 영혼의 네 번째 수준에 있다면, 그의 본질은 2100년에 장년 영혼 세 번째 수준의 생을 이미 경험했을 수도 있습니다. 비록 그 생애에서 떠오를 수 있는 구체적인 기억들이 이 평행우주의 미래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 생애는 그 사람의 현재 의식 수준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가 같은 시간대에 둘 이상의 장소에서 환생하고 있다면, 거의 항상 서로 다른 지역을 선택합니다. 환생의 목적은 우리의 시야를 넓히는 데 있으므로, 경험을 반복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같은 물질계의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아가는 것은 우주적 설계뿐 아니라 위대한 예술에서도 드러나는 경제성을 잘 보여 줍니다.
육체를 가진 상태에서 다른 환생 자기를 실제로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본질이 물질계에서 그런 방식으로 ‘스스로와 대화할’ 이유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은 관련된 개별 성격들에게 불편하고 혼란스러운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환생의 목적은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동시적 자기들뿐만 아니라, 과거 자기, 평행 자기, 가능성 있는 미래 자기들과도 교류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교류를 위한 기법으로는 명상, 자각몽, 회귀 치료 등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미 꿈속에서 그들과 접촉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비록 생애들은 연속적으로 이어지지만, 마흔세 번째 생애는 마흔두 번째 생애와 완전히 다른 배움의 주제를 다룰 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삶에서는, 예컨대 스물아홉 번째, 서른두 번째, 서른여섯 번째, 그리고 마흔한 번째 생애에서 관련된 가르침들을 완성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과거 생애들은 시간의 순서보다도 주제에 따라 더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삶과 삶 사이
제가 채널링한 바에 따르면, 사람은 평균적으로 죽은 후, 약 칠십 년을 기다린 다음 환생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라 챔버스Sarah Chambers는 그 기간을 약 200년으로 채널링했습니다. 저와 채널링한 마이클이 말한 것은 아마도 인구 증가로 인해 환생 기회가 더 많아진 근래의 시기를 가리킨 것일 수 있습니다. 물질계 생애 전체 주기를 놓고 보면, 200년이 평균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삶과 삶 사이의 간격은 사람마다 매우 다르며, 각자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일반적으로 젊은 영혼일수록 더 빠르게 환생하는 반면, 오래된 영혼은 삶을 설정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미 했던 일을 반복하는 것을 피하고, 업을 갚거나 모나드를 완수하거나 그 밖의 방식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특정한 상황을 찾습니다. 또한 오래된 영혼은 죽음과 다음 환생 사이의 아스트랄 구간astral interval과 그 유동적인 성격에 점차 편안함을 느끼게 되지만, 젊은 영혼은 비구조적인 상태를 위협적으로 여겨 물질계의 익숙한 구조로 빨리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젊은 영혼은 아이처럼 더 많은 구조를 필요로 합니다. ) 그런데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지난 생애를 되돌아보고, 필요하다면 휴식과 치유를 하며, 다음 생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삶과 삶 사이는 마치 배우가 연기 활동 중간에 쉬는 것과 비슷합니다. 한 배우가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듯이, 당신의 본질도 여러 가지 성격을 오가며 자신을 표현합니다. 그 성격들이 아무리 다양하더라도, 당신의 본질은 언제나 드러납니다. 마치 배우의 여러 역할 속에서도 그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환생하기 전에 우리는 다가오는 일생을 계획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매우 많은 일을 맡습니다.
○ 왜 영혼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떠맡으려 할까요?
대개는 미숙하기 때문입니다. 비유하자면, 처음으로 집을 짓는 시공자는 경험이 부족해서 도면상으론 괜찮아 보이는 설계라도 실제로 해 보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영혼도 물질계에서 충분한 실전 경험을 쌓기 전까지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떠맡을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영혼들은 죽은 후에 자신이 어떤 상황에 부닥치게 될지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가장 먼저 이용할 수 있는 몸으로 성급히 들어가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내자의 조언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영혼은 잘못된 선택을 덜 하게 됩니다.
더구나 삶의 사건이 항상 예상대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삶의 중간쯤에서 영혼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놓여 감당하기 힘든 경우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이것도 물질계 가르침의 일부이며, 그런 일들은 영혼이 끊임없이 깨어 있도록 도와줍니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고 느낀다면―다시 말해, 그 상황을 이해하거나 소화하거나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그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그 결과를 감수해야 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은 인간 경험의 작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사람들 대다수는 아무리 상황이 어렵더라도, 자신의 역량 수준에 적절한 환경 속에 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은 때때로 업보를 갚기 위해 겪기도 합니다. 고문을 당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감당하기 어려운 경험일 것입니다. 그것은 대개 영혼이 의도적으로 성장의 수단으로 선택하는 일이 아니지만, 그러한 극한의 시련 속에서도 궁극적으로는 깊은 성장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전생에 누군가를 고문했다면, 고문을 당하는 것은 그 빚을 갚는 한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고문을 겪는 모든 사람이 업보를 청산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불행히도 업보가 형성되는 과정에 놓인 피해자일 뿐입니다―그들은 그저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던 것입니다.
부정적인 업보karma는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지만, 그것은 ‘고통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라는 범주에 속합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기쁨을 느끼며 성장하기를 추구하지만, 누구나 각자 고통을 겪으며 성장해 온 몫이 있습니다. 굳이 고통을 겪지 않고도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는 계속해서 그렇게 성장하게 됩니다. 영혼은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합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런 여정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어디에도 모든 것을 아는 근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각자 마지막 장이 절대 쓰이지 않을 한 권의 책에 참여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다음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삶과 삶 사이, 즉 물질계에서 삶을 마친 후에 다음 생을 기다리는 동안, 온갖 종류의 비공식 수업과 공부 모임들이 존재합니다. 또한 명상·휴식·치유의 기회도 많이 있습니다. 특히 지난 생에서 오랜 병으로 고통받았던 영혼들은 온전히 회복하고 재충전하는 데 수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어떤 영혼들은 물질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영적인 안내자나 빛의 일꾼(세상을 밝히는 영적 봉사자)으로 활동하며, 지구의 더 큰 기운의 흐름과 상호작용하여 성장과 치유를 돕습니다. 이외에도 지구에 얽매인 영혼들이나 그 밖의 이유로 정체된 영혼(유령) 을 돕거나, 다음 생의 계획을 함께 세워 주는 영혼들도 있으며, 꼭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도 여유롭게 지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스트랄 상태에 있을 때는 언제든―삶과 삶 사이, 물질계physical plane를 마친 후, 또는 수면 중이나 유체이탈out-of-body experience 중에―우주의 어느 곳이든 그 아스트랄적 차원을 방문할 수 있습니다. 다만 대다수 존재는 자신이 익숙한 곳 가까이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례로 우리는 사랑에 대한 배움을 위해, 혹은 휴식과 이완을 위해 금성을 방문할 수도 있고, 재충전을 위해 태양을 찾을 수도 있으며, 자극을 얻기 위해 화성이나 수성을 방문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지구에서 온 존재가 아니라고 느끼며 이곳에서 불편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는 삶과 삶 사이에 다른 장소들을 여행했던 최근의 기억을 무의식적으로 감지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육 개월간 타히티에 머물다 돌아온 뉴욕 사람이 다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가 삶과 삶 사이에 우주의 다른 부분을 방문할 때, 우리는 거의 항상 아스트랄 상태로 머물며 다른 행성에 육체적으로 환생하지 않습니다. 육체적으로 환생하면 업보를 형성하게 되어, 깊이 얽히게 됩니다. 이는 마치 교환학생으로 배우는 것과 같으며, 동시에 여러 행성에서 업보를 쌓게 되면 각각의 업보가 서로 영향을 미쳐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깊게 관여하지 않으면서도 성장에 이바지하는 교훈이나 경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섯 가지 주요 영혼 시기는 우리가 물질계에 있을 때만 발전되는데, 이는 그것들이 이론이 아니라 실제 경험을 통해 얻는 물질계 관점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배움과 탐구들, 특히 다른 행성들의 아스트랄계에서의 경험들은 그러한 성장을 뒷받침하고 전반적으로 풍요롭게 해 줄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배경 연구가 되거나 우리의 인식을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마이클의 영언》 에서 마이클은 우리는 인간이 항상 인간 형태로 환생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종種이 지구에 묶여 있는 한, 그 종의 경험은 그 종으로 형상화한 해당 존재체의 모든 구성원이 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지구에 묶인 종種은 다른 행성으로 여행하여 그곳에서 살 능력이 없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외계인이 현재 지구에 환생하여 우리와 함께 걸어 다닌다고 주장하거나, 심지어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믿기도 합니다.
제 친구 중에 한 명이 채널링한 존재로부터 이것이 지구에서 보내는 첫 번째 삶이며, 다른 행성 출신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를 채널링해 보았을 때, 그는 제가 속한 존재체 계열과 연결되어 있었고, 이번 생은 지구에서의 653번째 생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매우 많은 횟수입니다. 저는 채널링한 존재가 그의 어떤 부분, 즉 다른 행성과 연결된 부분을 감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모두 복합적인 존재이며, 다양한 연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는 다른 행성에서 온 아스트랄 본질의 도움을 받고 있었고, 그 본질의 에너지 일부가 그의 몸 안에 그의 에너지와 함께 존재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 눈에는 그가 지구인처럼 보입니다!
어쨌든 우리가 지구에 환생해 있는 동안은, 여기가 바로 집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는 모두 이 행성 출신은 아닙니다―궁극적으로 우리는 모두 도道에서 왔으며, 대다수는 다른 행성에서 이전의 삶의 주기를 겪어 온 존재들입니다. 그렇다 해도, 현재의 주기를 다른 곳에서 시작했을지라도, 지금 우리는 여기, 지구에 있습니다.
무엇이든 가능하므로, 지구에 얽매이지 않은 다른 종족의 존재가 마치 외교관처럼 육체적으로 이곳에 환생해 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런 경우는 꽤 복잡할 수 있습니다. 우선, 새로운 행성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며, 이것이 바로 유아 영혼 주기가 길게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구와 매우 다른 환경을 가진 행성에서 온 존재라면, 혼란을 느끼기 쉽고 많은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가 여기서 누군가와 업보를 맺게 된다면, 그 인연 때문에 더 많은 삶을 위해 지구로 돌아와야 할 의무가 생길 수도 있고, 그렇다면 그것은 어디서 끝나게 될까요? 그는 두 행성 사이를 오가며 각각의 의무를 균형 있게 수행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지각 있는 종족 하나만 상대하는 것도 충분히 복잡한 일인데 말이죠(만약 그가 이미 다른 행성에서 환생 주기를 마쳤다면, 상황은 좀 더 수월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가능하긴 해도, 이런 사례가 드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영성계New Age circles에서는 누군가를 외계 존재로 인식하거나, 본질 교체라고 여기는 것이 일종의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듯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가운데 있는 외계인들’이 반드시 더 지혜롭거나 더 진화한 존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마치 미국인들이 영국인을 이상화하기는 하지만, 영국인이 미국인보다 나은 존재는 아닌 것처럼요. 우리는 모두 ‘도’의 영원한 불꽃입니다.
자신이 지구 출신이 아니라는 생각에 끌리는 사람 중 일부는 자신의 인간성을 부정하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들은 삶의 불완전함이나 인간의 육체성을 열등하거나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는데, 그 원인은 어린 시절의 상처나 전생의 정신적 충격일 수 있습니다. 또한 영적인 길을 걷는 이들은 종종 세상과 어긋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현재 세상이 우주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괴리감은 오히려 그들이 우주와 더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간성을 부정하는 것은, 비록 생존을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일 수는 있어도, 대가가 큽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효과적으로 살아가고, 삶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합니다.

전생 횟수
이제 저는 더 이상 마이클 개인 성향 분석에서 한 사람이 몇 번의 전생을 가졌는지 전달하지 않습니다. 환생은 마이클 가르침의 본질적인 요소이지만, 전생의 횟수 자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물론 때로는 흥미로울 수는 있습니다.)
과거에는 성향 분석에 전생 횟수를 포함했는데, 제가 본 가장 적은 횟수는 15번이었고, 가장 많은 횟수는 1,735번이었습니다. 마이클은 1,735번의 전생을 가진 그 여성이 ‘유아 사망 분야의 전문가’ 라고 말했습니다. 봉사자였고, 본질 차원에서 태어나고 곧 죽는 경험을 좋아했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부모에게 집중적인 성장을 제공하는 하나의 봉사 수단으로 보았습니다. 건강하지 않은 몸에 기꺼이 깃들려는 본질이 없다면, 그 아이는 사산되거나 환생한 영혼 없이 며칠 혹은 몇 주만 살다가 죽게 됩니다. 그런데 그 신체가 더 오래 생존할 가능성이 있다면, 거의 언제나 기꺼이 깃들려는 영혼이 존재합니다.
제가 본 성향 분석들에서 전생의 평균 횟수는 대략 100번 정도였습니다. 야브로의 책 중 하나에서는 평균적인 사람이 각 영혼 시기의 수준마다 일곱 번의 삶을 산다고 했습니다. 전체 수준이 서른다섯 개이므로, 주기를 마치기까지 평균 245번의 생 을 사는 셈입니다. 사이먼 워릭-스미스Simon Warwick­Smith와 호세 스티븐스Jose Stevens는 《마이클 안내서》 에서 한 수준을 완수하는 데 평균 세 번의 삶을 산다고 했습니다. 두 자료 모두 한 수준을 완수하는 데 평균 200년이 걸린다는 점은 일치하며, 차이는 생애의 평균 길이에 대한 견해에서 나옵니다. 이는 분명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습니다. 야브로의 기준은 고대 로마 시대의 출생 기준 평균 수명인 28세였고, 《안내서》에서는 현재 세계 평균인 67세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또한 각 수준은 걸리는 시간이 서로 다릅니다. 가령, 어떤 영혼 시기이든 여섯 번째 수준은 보통 일곱 번째 수준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생애들은 하나의 군집cluster으로 모이는데, 일반적으로 각 군은 다섯 번의 생애로 이루어집니다. 다섯 개의 군이 모여 25번의 생애로 이루어진 대군집greater cluster을 형성하고, 일곱 개의 대군집이 다시 모여 총 175번의 생애로 이루어진 하나의 단위segment를 이룹니다. 이러한 구성은 진동의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반드시 하나의 단위를 완수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군집은 학교에서 하나의 과목을 수강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대군집은 같은 주제에 대한 여러 과목의 연속이며, 단위는 대학 전공처럼 더 넓은 주제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영혼 시기와는 별도로 존재하는 일련의 삶의 완성을 구성합니다. 일례로 어떤 사람은 중국에서 하나의 군집을 경험할 수도 있고, 다양한 종교 단체에서 대군집을 수행할 수도 있습니다. 단위는 동물과 같은 광범위한 주제를 포함할 수도 있습니다. 마이클은 군집마다 일반적으로 다섯 번의 삶이 있다고 했는데, 이는 약 20년 이하로 짧게 끝난 삶들은 군집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생의 횟수가 많거나 적은 것은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저와 같은 일곱 번째 수준의 노년 영혼인 한 여성 친구는 전생이 42번이었고, 저는 544번이었습니다. 횟수에 차이로, 우리 사이에 본질적으로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며, 오히려(거친 환경에서 자라서) 더 실전 감각이 뛰어납니다. 비록 삶의 횟수가 적더라도, 많은 삶을 산 사람 못지않게 이곳에서 활발히 활동할 수 있으며, 다만 아스트랄계에서 비물질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 안내자로 활동하거나, 물질계에서의 성장과 치유를 보이지 않는 기운으로 지원하는 여러 집단 중 하나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삶과 삶 사이에 자연과 협력하며 데바(deva, 자연령)와 유사한 형태로 일하기도 합니다.
삶의 횟수가 적다는 것은 지구에서의 경험이 깊거나 폭넓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전쟁과 평화》를 완역본 대신 요약본으로 읽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런 영혼은 우주의 다른 영역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하기 때문에, 전생의 수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학습 속도가 느리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마이클은 육체적 환생을 가능하면 빨리 끝내고 모범적으로 행동해서 조기 출소하는 형벌처럼 여기지 않고, 환생을 어떤 기회만큼이나 유효한 경험의 기회로 봅니다. 물론, 많은 사람이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업보 양식에 갇히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단순히 자신이 흥미를 느끼거나 이루고 싶은 것이 있어서 이곳에 오기도 합니다. 지구는 분명히 어려운 곳이지만, 동시에 매우 매혹적이며 다양한 도전을 제공합니다.

손인문 번역

Loading

Leave a Reply Cancel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Shepherd Hoodwin

Enlightenment for Nitwits

facebooktwitter

Copyright © 2026 · Shepherd Hoodwin · by FSI
New York Web Development and SEO